1강 감정을 연구하는 과학자, 뇌의 공포와 불안
[내래이션]
오늘의 강사를 소개합니다. 음악 강의는 아닙니다. 그는 노래하는 과학자입니다. 공포와 불안으로 가는 길을 뇌 속에서 찾아낸 신경과학자입니다. 이제 공포와 대면할 시간. 뇌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저는 뉴욕대학교 신경과학과 교수이며, 기억에서의 감정, 특히 공포와 불안에 관한 뇌의 메커니즘을 연구합니다. 저는 제 경력 대부분을 이 주제를 연구하는데에 받쳤지만, 평범하지 않게 입문했습니다. 본격적인 연구를 설명하기 전에, 저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제 부모님은 모두 유럽계입니다. 아버지는 프랑스계이며, 어머니는 독일과 이탈리아 계입니다. 하지만 두분 다 완벽한 케이준* 이었습니다. 두분 다 일생 대부분을 불어를 사용하며 살다가, 영어를 배웠고, 제겐 항상 영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불행히도 전 불어를 못 배웠습니다. 제가 자랄 당시 프랑스 이민자들은 아이들을 미국인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분위기여서 가정에서는 불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기저기서 약간 주어듣기는 했습니다.
* 케이준 = 미국으로 이주한 프랑스계 캐나다 이민자
부모님은 1930년대 대 공황때 성장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로데오를 하셨습니다. 성함은 부 인데 로데오에서 황소를 타셨습니다. 황소를 타는 사람들은 늘 한가지 문제를 겪습니다. 바로 부상입니다. 제 아버지도 젊은 시절 황소에서 떨어져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로데오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향인 루이지애나주로 돌아오셔서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정육점을 물려받았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부's 마켓이 되었습니다.
전 1949년 12월 7일 자정쯤 태어났습니다. 저희는 정육점 바로 위에 살았습니다. 마을 외각의 소와 말이 뛰어노는 초원이나 농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어릴 때 정육점에서 저의 일은 뇌에서 총알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보통 소들의 머리에 총을 쏴서 도축했는데, 소 뇌는 그지역 사람들이 즐기는 별미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뇌 요리를 먹으며 납덩어리를 씹고 싶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일은 뇌에 저의 작은 손가락을 넣어서 안의 있는 납을 빼내는 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전 꽤 모범생이었지만, 수학은 잘 못했습니다. 사실 수학을 정말 못해서 과학은 제 전문분야가 아니었습니다. 과학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이 캠퍼스를 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거길 가길 바라셨죠. 등록금도 덜 들고, 집에서 가까우니 정육점 일도 도울 수 있을테니까요. 그런데 그건 원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 작은 마을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타협했습니다. 네가 경영학을 공부하고 은행원이 되면 도시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마.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경영학 전공으로 졸업했는데 그 졸업 후 뭘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마케팅 분야 석사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소비자 심리라는 주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왜 사람들은 특정 상품을 살까요? 이런 것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해 저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심리학과 사회 심리학 수업도 들었습니다. 이 때 인지와 기억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학습과 동기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학습과 동기라는 강의를 듣기로 했는데, 그 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신청이 가능한 강의였고, 대학원 강의라 제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의를 들은지 얼마 안되어서 저는 그 강의가 학습과 동기에 관련된 뇌 메커니즘의 대한 강의이며, 그것이 교수님이 연구하는 분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에도 전 뇌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루이지애나의 작은 마을에선 과학 교육은 물론, 심리학이나 철학같은 것들도 잘 몰랐습니다. 뇌에 대해선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어린 시절 총알을 꺼냈던 소 뇌의 그 부분 말고는 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강의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강의를 들었던 다른 모든 학생들이 심리학을 연구하는 박사 과정 학생인데다, 그 중 몇명은 교수님과 함께 연구하던 학생들이어서 심화 레벨 강의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아주 많은 것을 배웠고, 이 쪽 분야로 진출하고 싶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제가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2군데 지원했고, 그 중 한군데 합격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대학교 말미와 대학원에서 저를 신경과학자의 길로 이끈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 과학적 경력 초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뇌를 반으로 나눌 때에 무슨 일이 나는 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스토니브룩에 있는 뉴욕 주립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분리 뇌 연구 전문가인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아마 제가 어떻게 대학원에 들어갔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대학 때에는 경영학과 마케팅을 전공했고, 과학적 배경이 전혀 없었습니다. 대학 때 과학 강의를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약간 운이 따라주기도 했고, 아는 사람이 있는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루이지에나 주립 대학 교수님이 스토니브룩에 있는 누군가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 알려드릴 것은, 그 당시에 신경 과학 분야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신경 과학 분야라는 것이 없으니 미리 알만한 지식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심리 생물학을 전공으로 하는 심리학 석사 프로그램에 들어갔는데, 신경 과학자로 부터 좋은 추천서를 받았으니 아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신경 과학 전문 분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적임자라고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부낮생물학, 유전학,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같은 모든 종류의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제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때 분리 뇌 연구로 유 명한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님과 저는 새로운 환자 그룹을 연구했습니다. 이 환자들은 다트머스 의대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었습니다.
분리 뇌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여기 뇌 한쪽면이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핫도그 빵을 반으로 나누어서 아직 구워지지 않은 빵 안쪽 부분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자, 이 쪽 핫도그 빵 뇌에서 이런 하얀 물질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가리키는 이 테두리 부분이 뇌량이라는 부분입니다.
이 신경 섬유들은 뇌의 좌뇌에서 우뇌로 정보를 연결해 줍니다. 보통 심각한 간질 환자들의 경우,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 어떤 방법을 써도 발작을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 신경외과 의사가 가능성이 있는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조금 과격한 방법입니다. 뇌의 좌뇌와 우뇌를 소통하지 못하도록 뇌량을 잘라내버리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간질 발작이 좌뇌, 우뇌에서 서로 왔다갔다 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은 약물치료만으로도 발작을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들의 있어서 흥미로운 점은 심리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언어는 주로 좌뇌가 담당합니다. 우뇌는 다른 언어를 뺀 다양한 활동을 담당합니다. 분석, 자극 감지, 행동 조절등을 담당합니다. 하지만 언어 능력이 없어서 우뇌만으로는 말할 수 엇습니다.
예를 들어서 실험에서 좌뇌로 자극을 주면 환자가 '오 사과군요?' 합니다. 하지만 우뇌에 자극을 주고 무엇을 봤냐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좌뇌가 사과를 못봤기 때문에, 사과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몸의 왼쪽을 조절하는 우뇌가 사과를 보고 왼손을 뻗어 사과를 잡을 순 있습니다. 사과에 대해 말할 순 없어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리 뇌의 경우 이렇게 양쪽 뇌가 단절된 상태로 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 환자들의 다른 부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분리 뇌의 환자의 대한 기본적인 연구는 켈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이미 다 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실험을 통해 뇌의 두 자극을 준 채, 하나는 우뇌에 또 하나는 좌뇌에 주었습니다. 보통 우뇌의 정보는 좌뇌로 넘어가고, 좌뇌의 정보는 우뇌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분리 뇌 환자에게 자극을 주었을 때 두 손을 다른 물건을 잡았습니다. 좌뇌는 오른손이 고른 물건이 무엇인지 얘기할 수 있었지만 왼손이 고른 무엇이 물건이 무엇인지는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좌뇌는 우뇌가 고른 물건의 이름을 댈 순 없지만, 왜 골랐는지 설명은 합니다. 이건 잘 모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피 실험자가 닭을 오른손으로 가르킵니다. 우리는 물어봅니다. "왜 닭을 골랐니?" 오른손과 연결된 좌뇌가 대답합니다. "닭발을 봐서 닭을 골랐습니다." 또 좌뇌에게 묻습니다. "왜 왼손으로는 삽을 고른 것이니?", 실험자는 "닭장을 치우려면 삽이 실요하니까요"라고 대답합니다.
피 실험자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실험으로 저희는 이게 우리가 항상 하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행동은 계속해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데, 우리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느껴서 행동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몸이 통제를 벗어난 행동을 하면 불안해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 의식이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은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린 이렇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이런 일을 하는데에 중요한 뇌의 시스템 중 하나가 아마 '감정 시스템*' 일 것입니다. 어쩌면 감정 시스템이 이렇게 저렇게 반응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왜 특정 행동을하고 왜 특정 감정을 느끼는지 감정을 설명해야만 합니다. 당시에 이런 생각은 아무도 한 적이 없으며, 감정을 연구한다는 개념 역시 생소했습니다. 인지 운동* 때문에 심리학에서 감정은 소외당하던 때였습니다. 연구자들은 감정보다는 인식과 기억에 대한 주제에 훨씬 더 흥미를 가졌습니다.
* 감정 시스템 =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여러가지 반응을 만들고 이야기를 지어냄
* 인지 운동 = 20세기 중후반을 주도하던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처럼 이해하려는 경향. 당시 심리학의 방향에 영향을 줌
그 때 제 멘토인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님이 말했습니다. "신경과학 분야에 감정에 대한 연구가 많이 없으므로 전공으로 그것을 한번 생각해봐." 그리고 불과 며칠 전 또다른 교수님이 수업 중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두 다 하는 공부를 하지 말게. 다른 모두가 하는 공부를 하지 말고 아무도 파고들지 않은 분야를 공부하렴." 이어서 감정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말이 머리속에 전구가 켜지듯이 영감을 주었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감정을 연구할래요."
그리고 감정에 대해 연구한 자료를 찾아보니 정말 거의 없었습니다. 가자니가 교수님 말처럼 감정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1978년 당시를 생각해보았을 때 기술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1978년 당시에는 실제 인간의 뇌를 세부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술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땐 기능적 영상 촬영 기술도 없었으며 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려주는 기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쥐를 연구해보겠습니다." 제가 연구하고자 했던 정서적 행동이 쥐와 인간에게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것이 감정 연구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위험에 빠졌을 때 인간의 반응과 비슷한 쥐의 원시적 행동을 연구해서 최소한 무의식적 통제에 대해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어린 시절 저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결국 이 비과학적인 일들을 다 거치고 나서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그 첫번째 단계가 뭐였는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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