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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 - 실천윤리학, 4강 동물 해방 : 실전편

셩잇님 2023. 6. 2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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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동물 해당 : 실전편

 

[동물은 정말 고통을 느낄까?]

 아마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대체 어느 동물이 고통을 느끼나요?", 제 생각에 고통을 느끼는 동물은 척추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척추동물은 우리와 비슷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고통에 반응합니다. 또한 일부 무척추동물도 고통을 느낍니다. 문어의 복잡한 행동을 보면 문어는 의식이 있는 존재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며, 행복뿐 아니라 불행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곤충은 어떠한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 중 일부 그러니까 굴, 조개, 같은 생물은 고통을 못 느낄 수 있습니다. 고통을 느낄 정도로 복잡한 신경계가 굴이나 조개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동물이란 고통을 느낄 줄 아는 동물이나 혹은 고통을 느낄 가능성이 있는 동물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는 동물의 고통과 행복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행복만큼 무게를 두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린 인간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고 동물에게는 잔혹한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때론 아주 끔찍한 고통을 동물에게 안겨주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말입니다.

 

[예시 1]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가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실험용 동물입니다. 인간이 실험 대상으로 참여하는 의학 실험의 경우 특정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 실험의 경우 그 기준이 완전히 다릅니다. 동물에겐 극심한 고통을 줄 수 있으며, 고통을 주는 것도 모자라 죽일 수 있습니다. 동물 실험을 인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발한 제품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동물에게 시험해보기도 합니다. 인간이 사용했을 때 조금이라도 해가 있을까 봐입니다. 그런 제품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데 꼭 필요한 의약품 같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식용 색소나 가정용 세제 같은 제품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도 동물 실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일부 동물은 죽을 것입니다. 죽지 않더라도 병에 걸려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예시 2]

그리고 또 어떤 실험에서 동물에게 전기 충격 같은 다양한 종류의 고통을 안겨줍니다. 심리학 이론을 검증하거나 동물 실험을 통해 우울증을 연구하기 위해서입니다. 50~60년 동안 이런 실험을 계속해왔지만 아직까지 인간의 우울증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동물 실험 때문에 수십만 마리의 동물들이 굉장히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기는 것은 바로 축산업계입니다. 우리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영역입니다. 고통받는 동물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동물이 실험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 세계에서 매년 1억 마리가 희생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국가의 통계를 확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UN 식량 농업 기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사육되고 도축되는 숫자는 매년 740억 마리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실험실에서 희생되는 동물들의 수백 배나 많은 수입니다. 그리고 집에서 학대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의 수보다도 훨씬 많은 수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동물의 고통에 대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면 그러니까 동물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싶다면 식용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데에 집중해야 합니다.

 


 

 저도 어릴 때엔 사람이 사육하는 동물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들판에서 포식자들의 위협을 받지도 않고, 보살핌을 받으며 잘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물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은 때가 되었을 때 도살장에 끌려가 죽는 것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매년 사육되고 도축되는 약 740억 마리 동물 대다수가 밀집 사육장에 살고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공장식 축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 동물들은 들판에 살지 않습니다. 커다란 헛간 안에 갇혀 삽니다. 예를 들어 닭의 경우 헛간 하나의 약 2만 마리의 닭이 삽니다. 굉장히 분빕니다. 알을 낳는 암탉은 날개도 다 펼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철창 우리에 갇혀 삽니다.

 

 돼지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헛간 하나의 돼지 수백 마리가 모여 삽니다. 움직일 공간조차 없습니다. 먹이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활동도 할 수 없습니다. 먹이가 일단 공급되면 몇 분 만에 모두 먹어치울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또다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밖을 돌아다닐 수도 없고 햇볕을 쬘 수도 없으며 풀을 뜯을 수도 없습니다.

 

 또한 닭은 성장 촉진제로 인한 급격한 성장 때문에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평균적인 닭은 겨우 6~7주 된 닭입니다. 아기나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성장 촉진제를 맞은 탓에 몸무게는 성체와 같은 수준입니다. 문제는 다리가 완전히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체의 체중을 지탱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뚱뚱한 사람의 다리가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닭 행동을 연구하는 전무가들에 따르면 출하 체중에 도달하기 직전인 마지막 2~3주 즈음에 닭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립니다. 연약한 다리로 서있느라 육체적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관절염에 걸린 사람이 온종일 서 있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앉아있으면 되는데 왜 서있느냐고요? 닭이 앉아있을 수 없는 이유는 바닥에 깔린 배설물 때문입니다. 지푸라기나 톱밥 위에도 온통 배설물이 깔려 있습니다. 사육장 안은 매우 습하기 때문에 배설물의 암모니아가 산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 암모니아 산은 화상을 입힙니다. 닭이 바닥에 오래 앉아 있으면 분명 화상을 입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가 아파도 닭은 서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더 싼 가격에 더 많은 고기나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동물 수백억 마리의 행복을 빼앗고 그들의 삶을 희생시킵니다. 우리가 동물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은 단지 더 저렴하게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린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건강을 생각해도 불필요한 일이며 인간의 식생활은 물론이고 지구 환경을 생각해도 모두 필요치 않은 일입니다. 실제로 이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란셋'이라는 저명한 의료 저널에 논문을 발표했는데 우리가 육식을 중단하고 대신 채식과 곡식의 섭취를 늘리면 모든 면이 지금 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건강에도 좋고 지구에도 더 좋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축산업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기를 모두 청정에너지로 대체한다고 해도,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고기를 계속 먹는다면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할 순 없습니다.

 

 저는 지난 50년간 채식주의자로 살았습니다. 최근엔 더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동물석 식품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고 싶다면 최소한 공장식 축산 제품이라도 그만 먹어야 합니다. 일단 그렇게 한 다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동물성 식품 섭취를 완전히 줄이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실용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동물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고 싶다면 그래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채식이 늘고 있지만, 이런 속도로는 부족합니다. 고통받는 동물을 구하고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 가시를 줄이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변화가 시급합니다. 전 현재 우리가 시장에서 사는 공장식 축산 제품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길 바랍니다. 이를테면 배양육* 같은 것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배양육은 동물 세포를 배양해서 만든 것입니다. 진짜 고기지만 하지만 살아있는 동물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배양육은 동물을 위해서도 지구를 위해서도 더 좋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배양육 = 동물의 세포를 배양해 만들어내는 고기

 

 그래서 저는 배양육 개발에 찬성합니다. 동물에서 나는 고기를 배양육이 대체하길 바랍니다. 제가 처음 동물 해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건 정신 나간 소리라고 했습니다. 동물 해방을 말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축사의 문을 열고 동물을 내보내자는 것인가요?" 물론 그러면 재앙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 동물은 야생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완전한 오해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동물 착취를 멈추자고 했던 것입니다.

 

 처음엔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제 의견을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그 점에서 우린 꾸준히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동물에 대한 염려가 늘었으며 동물에 대한 존중이 늘었고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 발전해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인간의 착취로부터 동물을 완전히 해방하지는 못했지만요.

 


 

[동물 해방을 해야 하는 이유]

 저는 동물의 지위를 부정할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가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존재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비슷한 양의 고통이 발생한다면 동물의 고통이던 인간의 고통이던 똑같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 생각에는 인간이 호모사피엔스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이 가질 수 없는 권리나 도덕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우린 성차별을 거부합니다. 여자에겐 없는 권리를 남자만 가지기 때문입니다. 우린 인종 차별도 거부합니다. 특정 인종만 권리를 누릴 수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린 종 차별도 거부해야 합니다. 종 차별의 논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유만으로 도덕적 지위를 가질 자격이 생긴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호모 사피엔스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서라면 다른 종을 노예로 삼아 착취할 수 있다는 이런 종 차별 주의를 거부해야 합니다.

 

 만약 종 차별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제안하는 것은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는 데에서 출발해 보자는 것입니다. 공장식 축산업계에서 생산하는 동물성 식품의 섭취를 중단함으로써 당신의 지분을 낮추는 것입니다. 즉 공장식 축사에서 사는 동물의 복지에 더 신경을 쓰자는 것입니다. 먹거리의 신경 쓰세요. 먹거리를 윤리적으로 선택하세요. 그렇게 한다면 종 차별적인 생각과 그동안 깊은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관습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 관습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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