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우리 몸에 설계자가 있을까?
Q. 세포는 어떻게 생명체로 발전하나요?
A. 교과서에서 DNA를 우리 몸의 청사진*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청사진이란 건축가가 집을 설계하거나 차를 설계할 때 만드는 설계도와 같습니다. 설계도의 핵심은 '되돌릴 수 있다.'라는 점입니다. 집이 있다면 모든 방의 치수를 측량하여 청사진을 새로 그릴 수 있습니다. 이는 집뿐만 아니라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지 청사진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 청사진 =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구상 등의 비유.
반면 배아를 만들고 신체를 구성하는 DNA는 설계도와 달리 되돌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의 신체 치수를 모두 안다고 하더라도 DNA 까지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DNA는 요리법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케이크의 레시피가 있다고 합시다. 레시피를 따라 하면 케이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케이크의 각 부위의 구성요소를 샅샅이 다 안다고 해서 레시피를 재 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레시피의 순서대로 따라 해야 케이크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셀이나 워드와 같이 크고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은 프로그래머에 의해 만들어지고 아주 잘 작동합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셀이나 워드로 한 작업을 보고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추측할 수는 있지만, 처음 만든 설계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DNA는 신체 청사진이 아닙니다. DNA는 신체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나 레시피일 뿐입니다.
상향식과 하향식 설계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건축가가 집을 설계하는 방식이 바로 하향식 설계입니다. 하향식 설계방식이란 건축가가 구상하고 설계도를 그려내면 건축업자, 목수, 배관공들이 건축가가 그린 설계도를 따라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을 일컫습니다. 상향식 설계는 인간인 우리에게는 친숙한 개념이 아닙니다.
제가 집필한 ≪신, 만들어진 위험≫에는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매우 유사한 흰개미 집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성당과 흰개미집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릅니다. 가우디의 설계는 하향식 설계입니다. 하지만 흰개미 집은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입니다. 각각의 흰개미는 아주 작고 간단한 규칙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 규칙은 흰개미 집의 웅장한 설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흰개미들이 따르는 단순한 규칙은 간단합니다. 예를 들면 흰개미들은 진흙 더미를 보면 그 위에 소량의 진흙을 쌓아라 같은 것들입니다. 흰개미는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모릅니다. 사람들 눈에는 흰개미의 집이 위대한 대성당처럼 보이지만, 이는 설계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흰개미의 신경계나 DNA 안에는 집을 지을 때의 설계도에 관한 개념은 없습니다. 흰개미 집은 수많은 흰개미들의 집단행동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개미들인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집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추측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저 작고 단순한 규칙을 따를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상향식 설계의 핵심입니다.
세포 발생에서도 상향식 설계 방식이 적용됩니다. 인간이나 동물들의 배아가 발달하는 방식은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의 의한 것입니다. DNA는 건축가의 계획과는 다릅니다. 배아발달 과정에서 모든 세포가 작고 부분적인 규칙을 따라 행동하면서, 신체는 상향식으로 설계됩니다.
옥스퍼드에서 머지않은 지역에서는 겨울마다 찌르레기 무리가 장관입니다. 수만 마리 찌르레기가 때를 이루어 아름다운 몸짓으로 날갯짓을 합니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입니다. 이들은 회전하고 방향을 바꿉니다.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유기체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수 만 마리의 찌르레기가 모인 것입니다. 모든 찌르레기는 작은 단순한 규칙을 따릅니다. 무리 전체가 어떻게 보일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각각의 새는 특정 각도를 유지하며 옆의 새를 따라서 날아라 같은 작은 규칙을 따릅니다. 그 결과 멋진 광경이 연출됩니다. 그들을 지휘하는 지휘가나 안무가는 없습니다. 그저 상향식 설계에 따라 나타날 뿐입니다.
우리는 뛰어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크레이그 레이 놀지'라는 프로그래머는 보이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컴퓨터의 새 한 마리의 행동을 아주 자세하게 프로그래밍했습니다. 전체 무리의 대해서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새 한 마리의 행동을 설정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새를 복제했습니다. 수 백개의 보이드를 만들거나, 미묘한 차이점을 두고 컴퓨터에 만든 새를 동시에 풀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새들의 조직화된 움직임은 하향식 설계를 통한 것이 아닌, 개별 새의 상향식 설계를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이후 무리의 행동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세포 발생은 찌르레기 무리와 상당히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훨씬 더 복잡합니다. 각 세포의 행동은 DNA의 영향을 받습니다. 모든 세포의 똑같은 DNA가 들어있지만, 각각의 세포에는 각기 DNA 부위에 위치한 유전자가 제각각 활성화됩니다. 매우 명석한 수학가인 '조지 오스터'는 '크레이그 레이 놀지'의 보이드 프로그램과 비슷한 방식으로 세포 발생의 일부를 실험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세포 하나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했습니다. 레이놀즈가 한 마리 새의 행동을 프로그래밍한 것처럼 세포 하나의 행동을 설정했습니다. 한 세포를 똑같이 복제하여 수백 개의 세포를 생성하고, 상호작용하며 행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컴퓨터 상의 세포들은 배아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제 세포가 하는 방식으로 행동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단일세포는 2개, 4개, 8개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분열합니다. 이후 세포는 난자 크기만 한 공모양의 포배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공의 구멍이 생기고 세포벽이 안으로 들어가는 함입이 시작됩니다. 낭배가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낭배가 형성된 후에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신경관이 형성됩니다. 이 세포층이 신경관을 형성하는 동안 배아 발달과 똑같은 과정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실제 배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예시일 뿐이지만, 배아 발달 과정에도 상향식 설계가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세포의 행동은 DNA에 의한 것이고, 세포들은 배아를 발달시키는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세포들은 각기 다른 조직으로 형성됩니다. 간세포는 신장 세포와 다르고 근육 세포와 다르며 신경 세포와도 다릅니다. 서로 다른 유전자가 신체 각 부분에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DNA는 단백질이 합성하는 과정을 프로그래밍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3개의 DNA 염기가 한 조가 되어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합니다. 유전체의 존재하는 DNA 체인이 아미노산 체인을 형성하면서 결과적으로 단백질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여기 아미노산 체인이 있습니다. 바로 단백질이 됩니다. 단백질은 화학적 성질 때문에 특정 모양으로 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아미노산 간의 화학적 끌림 때문에 감기면서 매듭이 만들어집니다. 이 매듭은 아미노산 배열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결과 복잡한 3차원 매듭 즉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형성합니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는 단백질의 촉매 특성을 결정합니다. 이것은 효소 즉 촉매라고 합니다.
촉매란 화학반응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물질의 반응 속도를 높여주는 물질입니다. 여러분은 세포 안에 있는 수많은 화학물들끼리 어떤 반응도 척척 이루어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특정한 효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반응할 수 없습니다. 이 효소들은 세포들을 돌아다닙니다. 어떤 세포에서 반응이 생기는 것은 그 안에 어떤 효소가 있느냐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이는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요? 바로 DNA입니다. 어떤 유전자가 활성화되느냐입니다. 그래서 단백질의 3차원 구조가 어떤 효소를 만들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구조입니다. 열쇠 구멍처럼 생겼습니다. 열쇠 구멍 같은 구조가 특정한 화학반응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유전자가 세포에서 활성화되면 특정 단백질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 단백질이 특정한 모양으로 감기면서 매듭을 만들고 효소적 특징일 결정합니다. 어떤 화학반응의 속도를 증가시킬지 결정하며, 세포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조지 오스터의 시뮬레이션 방식처럼 세포의 행동은 다른 세포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DNA에서 세포 발생까지는 꽤 긴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의 모든 단계는 이제 밝혀졌습니다.
Q. 설계자가 없다면 무엇이 인간을 설계했나요?
A. 설계자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체는 DNA에 의한 세포 간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납니다. 상향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냥 생겨납니다. 완성된 신체의 형태, 피부색, 행동, 감각기관까지 모두 이 과정에 의해 결정됩니다. 체내의 유전자들이 생명체를 잘 만들어서 생존과 번식을 잘한다면 바로 그 유전자들이 다음 세대의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선택입니다.
'TV > EBS, 위대한 수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처드 도킨스 - 당신이 몰랐던 진화론, 4강 불완전한 설계 (2) | 2023.05.29 |
---|---|
리처드 도킨스 - 당신이 몰랐던 진화론, 3강 날개의 비밀 (0) | 2023.05.28 |
리처드 도킨스 - 당신이 몰랐던 진화론, 1강 생명은 왜 복잡한가 (0) | 2023.05.26 |
폴 크루그먼 - 세계 경제 예측, 5강 궁극의 문제 (0) | 2023.05.25 |
폴 크루그먼 - 세계 경제 예측, 4강 2023 포스트 팬데믹 (0) | 2023.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