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20살. 돈만주면 입학되는 대학에 들어갔다.
애초에 공부랑은 거리가 멀었고 여느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넌 똑똑한데 왜 공부를 안하니.." 라는 말에
내 스스로를 너무나 관대하게 보며 살았다.
대학에서도 술에 게임에 여자애들에 빠져서 하루하루 시간을 탕진하며 보내다가 정신차려보니 군대도 다녀왔다.
전역하고 나서 대학생 꼬리표는 2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조급해지기 보다 너그러워져만 갔다.
졸업반이 되었으나 난 1학년 애들보다 못한 전공지식수준에 나이만 더해진 인간이였다.
애초에 남에게 살가운 편은 아니나 그렇다고 아싸처럼 혼자있길 좋아하는 편도 아니여서 주위 애들은 많았고
그들이 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모든 것들을 보면서도 '어차피 졸업하고 다른거 할건데 뭐. 원해서 온 전공도 아니고..' 라는
생각에 자위하며 학비를 위해 다니는 알바에 스스로의 성실함을 칭찬했다.
그런 나에게도 스스로 해답을 찾기위한 질문은 있었다.
왜 사람은 일을해야 되지?
돈을 벌면 뭐가 좋지?
얼마나 벌어야 많이 버는걸까?
즐거운 일을 하는게 행복하다지만 일과 즐거움이 공존이 되나?
그러다 방학때 혼자서 속초로 여행을 떠났다. 학비내고 나면 알바비 남는건 빠듯했으니 숙소를 잡는건 무리였고
저녁 버스에 올라 도착하면 해뜨길 기다리다가 일출 보고 아침 먹고 돌아올 생각이였다.
막상 도착하니 아침까지 바닷가에서 기다릴 생각에 막막했지만 위 물음들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해답은 커녕 머리만 더 복잡해질때쯤 몇몇 사람들이 나오고 곧이어 바다에 해가 뜨기 시작했다.
뭐.... 아름다웠다.
고민에 대한 해답을 꼭 찾아가겠다는 다짐같은건 처음부터 없었다고 해도 일출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더 이런 고민들이 하찮게 느껴지고 더 무력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에 정신이 멍해지는 와중에 이제서야 주위 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친구로 보이는 두 남자의 말이 가까이 왔다.
"아 왜 니만 먼저가. 해뜨는거 못봤잖아"
"너가 늦은거지. 난 계속 빨리가야 된다고 했잖아."
"일어나긴 일찍 일어났는데 씻어야 정신을 차리지. 잠도 얼마 못잤구만"
"핑계좀 대지마. 니가 맨날 핑계 대봤자 주위 사람은 다 알아"
투닥거리며 멀어져가는 두 남자를 멍하니 보며 머리에 마지막 말이 멤돌았다.
핑계 대봤자 주위 사람은 다 알아..
내 주위 사람들은 날 어떻게 볼까? 내가 어떤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나에 대한 평판이
바뀔리는 거의 없다. 왜냐면 내가 그들을 볼때도 그러하기 때문에.. 아니 그 전에 하루 아침에 행동이 바뀌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해오던 습관이나 모습을 유지하는게 대부분이 때문에 아무리 이제와서 이건 이랬고 저건 저랬고
말로 포장해봤자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이 변화 되긴 힘들다.
그때부터 내 주위 사람 하나하나를 생각했다. 그러다 도달한 결론은 내가 생각하는 한 사람에 대한 평판이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는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과 어떤 일관적인 평판을 가진 사람은 한순간의 행동이 아닌 지속적으로 보여준
모습으로 인해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평판은 내 스스로가 볼때도 그러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진심을 담은 농담을 던지는 것에서도 알수 있었다.
내가 나에 대해서 아무리 자위하고 핑계대며 평가해봤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이 내 민낯이였다.
너무 부끄러웠다. 한없이 여유롭던 마음은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순식간에 조급함으로 가득해졌다.
일상으로 돌아와 지나가다 보이는 분식집 간판보다도 관심없던 학과 게시판을 차분히 둘러보았다.
전공분야 프로젝트 지원 안내 게시물들은 단위별로 가득했고 전국단위 프로젝트 하나를 선택했다.
시간은 4개월. 4학년 2학기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내 마지막 대학생활을 함께할 첫 프로젝트였다.
생각하고 온 전공이 아니니 지식은 전무했다. 많은 지인들 중 굳이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주위 사람들이 같은 전공이니 물어볼 상대라도 있어서 다행이였다.
교수님께 부탁해 연구실에 자리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 시작했다.
제일 먼저 알바비 절반 대출 절반으로 내던 등록금도 마지막으로 납입했으니 알바도 그만 두었다.
집은 걸어서 20분 거리였으나 며칠에 한번 잠깐 들러 옷만 갈아입었다.
그 외에는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5시까지 프로젝트를 하다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것들을
정리하고 나서 잠이 들면 꿈에서도 멤돌다 8시에 잠이 깼다.
조급한 마음에 문제들을 하나씩 다시 곱씹다 교수님들이나 지인들이 오면 제일먼저 가서 물어보았다.
아스피린을 아무리 먹어도 두통은 없어지지 않았다. 20대 중반에 남자가 수염이 이렇게 자랄수도 있나 싶을정도로 길게 자랐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공부해야 할것들이 더 많아져갔다.
화장실을 참다가 도저히 못참겠을때는 뛰어갔다.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젝트를 손대보고 실패의
케이스를 하나라도 늘려보는게 단편적인 성공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4개월은 순식간에 흘렀다.
내 결과물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나름 내 인생 처음이자 최고의 노력이 만든 결과물이라 보면서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프로젝트 발표 날. 떨리는 마음으로 발표를 마쳤지만 처참했다.
내 결과물은 타인 들의 프로젝트에 감히 비할바가 아니였다. 드라마 같은 역전과 실전의 괴리감에 온몸이 부끄러웠다.
그들의 결과물이 컴퓨터라면 내 결과물은 계산기만도 못했다.
눈물이 나고 후회가 됐다. 왜.. 왜 진작 이렇게 해보지 않았을까.. 그저 게으름과 남탓만 하며 보내온 세월들이 아까웠다.
눈길을 걸어 집에 돌아와 한없이 울었다.
며칠을 집안에 박혀있다가 졸업식 준비로 한창인 대학교에 갔다.
연구실에 쌓인 짐도 챙기고 지인들과 인사도 하고 어찌됐냐는 질문에 잘 안됐다며 웃어보이기도 했다.
짐을들고 집에 가는 길에 문자가 왔다. 단체발송 프로젝트 시상식 참석 요청 문자를 보며 다시한번 웃음이 났다.
그래도 열심히 했잖아. 분명 내 인생에 거름이 될거야. 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자위를 했다.
다음날 느즈막히 일어나니 어느새 두통도 사라졌다는 사실이 문득 날 기분 좋게 만들었다.
초가을의 나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평판은 지금 와서는 확연히 달라져있었다.
씻으면서 보는 거울에 내 얼굴은 기름기도 빠지고 초췌해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눈매가 바뀐 느낌도 들었다. 당연히 기분탓이겠지.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시상식 참석 가능 여부를 물었고 최우수상 대상자니 멀어도 꼭 와달라는 말을 전해왔다.
뭐지.? 이사람 뭘 착각한걸까? 발표일의 내 수준은 누가봐도 차원이 다른 수준미만이였다.
재차 물어보았지만 최우수상이 확실했다. 다음날 준비하고 서울로 가는 기차안에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상 한팀 최우수상 두팀의 프로젝트 내용과 시상이 되는 순간에서도 내 프로젝트는 한없이 초라했다.
전공분야의 대기업 부장급 인사가 나와 프로젝트 시상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내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은 가장 길고 자세하게 업급되었다.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실것으로 알고 아마 당사자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신 기술을 적용한 수많은 프로젝트가
출품되었고 그 중에서 이 프로젝트에 최우수상을 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실텐데요. 최신 기술의 라이브러리를 적용하여
만들어진 여러 프로젝트는 대학생들로써 정말 대단한 수준의 프로젝트 임에는 분명하나 저희 회사 대리에게 준비시키면 2~3주내
완성 시킬 수 있는 내용입니다. 겉보기에도 화려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대부분의 기술은 이미 라이브러리화되어 있고 개발자들은
해당 기술을 가져와서 조립하는 식이지요. 물론 이것자체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저희 회사 대리에게도 반년의
시간이 소요 되는 내용입니다. 최신 라이브러리가 거의 사용되지 않고 그 내용 자체가 불안정하지만 코드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정말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여기 있는 분들중 자신이 사용한 어떤 라이브러리를 반년 내 코드로
구현할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을거에요. 치열한 고민과 목표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결과물이였습니다. 고생하셨고 축하드립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평소 TV 시상식에서 우는 연예인들이 이상해 보였었는데 내 노력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꺼억꺼억 소리가 날정도로 울음이 터졌다.
이후 서울의 고시원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전국 단위 프로젝트 최우수상이라는 스펙은 학교명보다 학점보다 영어점수보다 높았다.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었지만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었다. 탄탄한 중견기업에 입사하여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갔다.
한달 18만원짜리 고시원 생활에 식사는 회사에서 해결하고 학자금 대출을 갚고도 월세 보증금은 모을 수 있었다.
토요일 일요일에 회사에 있는 것도 좋았다. 식사도 해결되고 내 부족한 기반 공부도 하고 프로젝트 진행때보다 여유롭기도 했다.
그 회사에서 4년간의 생활을 마무리 하고 대기업 경력직으로 오게 되었다.
정시 퇴근과 주말에 집에 있는 시간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야 사람처럼 사는 느낌이 들었다.
대출을 받아 서울의 25평 전세집으로 이사를 했다. 대학생때 지인들이 놀러와서 성공했다며 축하해주는 것도 기분 좋았다.
내가 지금 느끼는 행복은 내 보잘것 없는 노력에 비하면 아주 컸다.
30년을 넘게 살면서 노력이라고 해봤자 5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4개월 프로젝트에 외엔 그냥 남들처럼만 했을 뿐이다.
지금 내 평판은 부모님도 친구들도 회사사람들도 180도 바뀌어 있었다.
올해 오랜만에 다시 홀로 찾은 속초 바다는 한겨울이지만 따뜻했다.
출처 : 웃긴대학 암쏘메
'기타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라이같은 신규가 들어왔어요.TXT (0) | 2020.08.17 |
---|---|
사과문의 정석 (이재용, 전현무) (0) | 2020.08.13 |
결혼생활이 재미가 없어요 (0) | 2020.07.23 |
28살, 새로 시작하기에 너무 많은 나이... (0) | 2020.06.17 |
한국도로공사 긴급견인서비스 (0) | 2020.06.07 |